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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Med Student

불임센터의 어느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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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F(In Vitro Fertilization), 사실 저 그림은 ICSI(IntraCytoplasmic Sperm Injection)



엊그제, 환자의 차트를 봤더니 나이가 24세 10개월이란다. 보통 30대 중반이나 40대 초반의 환자가 대부분인 불임센터에 20대 중반의 환자가 오다니 신기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지 않아 이미 두 차례의 인공수정을 시도했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한다. 환자는 시술실에 들어올 때부터 연신 교수님을 찾았다. '선생님, 잘 부탁드려요. 잘 해 주세요.' 교수님을 발견하고는 끊임없이 잘 부탁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정맥 주사를 통해 마취제가 들어가 의식이 흐려질 때도 되었는데도 불분명한 발음으로 '션생님, 잘 부탁드려요.'라고 계속 이야기 했다. 결국, 원할한 시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마취제를 조금 더 써야 했다.

그 광경을 보면서 얼마나 간절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도 그렇고 자기도 아직 젊고 건강한데, 아이를 가지지 못하고 있으니 집안 어른들 볼 면목도 없고, 괜히 자기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그랬을 것이다. 그러니, 저렇게 마취 되면서 정신이 몽롱해 지는데도 잘 부탁한다는 말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겠지. 시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마취가 깨자 이번에는 연신 '고맙습니다.'라고 어찌나 많이 이야기 하시는지, 참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사실 불임의 원인은 다양하고 100% 여자의 문제는 아니다. 물론 여자의 문제인 경우가 반 정도이고, 나머지가 남자가 원인이거나 남녀 모두 문제, 혹은 원인 미상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애가 안 생기면 모두 여자탓이고, 딸 낳아도 여자탓.(고등학교 생물만 배워도, 구태여 따지자면 이는 남자탓임을 알 수 있다. 여자의 성염색체는 XX이므로 엄마는 X만 줄 수 있고, 아빠가 Y를 주어야 아들이 태어나기 때문.)

이번 주 여성의학연구소 실습을 돌면서 불임에 대해 공부도 하고, 많은 시술도 봤다. 국내에서 민간병원 최초로 시험관 아기를 탄생시킨 우리학교 병원이니만큼 교수님들이나 선생님들의 자부심 또한 대단했다. 내가 주로 참관해서 본 어느 교수님께서는 ET(Embryo Transfer, 배아이식, 체외수정 후 자궁 안에 배아를 넣는 과정)를 하러 들어온 환자에게 '이번에 꼭 임신합시다.' 하면서 용기를 불어넣어주시고, ET가 끝나고 나서는 마취에서 깨어나느라 몽롱한 환자의 손을 잡고 힘차게 하이파이브를 하시며 '다음 검진하러 올 땐 임신해서 오세요. 화이팅!' 이렇게 이야기 해 주시던데, 작은 것이지만 이렇게 환자의 마음에 충분히 공감해 주는 자세야 말로 앞으로 내가 꼭 가져야 하는 자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시술 끝났다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는 것보다 백배 천배 낫지 않은가.

체외수정에 대한 기술이 매울 발달하여 요즘에는 80~90% 이상 체외수정이 성공한다고 한다. 위 사진이나 TV 등 언론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기술은 ICSI, 정자주입법이라고 하여 난자에 정자를 직접 넣어주는 방법이다. 이렇게 다양하고 어려운 방법들을 활용하여 수정율은 높은데, 아직도 문제는 착상률이라고 한다. 한 번에 10% 정도 밖에 되지 않아, ET를 할 때 배아를 서너 개 이식을 하게 된다. 그러면, 임신 성공율이 30~40% 정도로 올라갈 수 있으니 말이다. 현재도 착상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고 하는데, 앞으로 다양한 연구로 인해 착상율도 많이 높아져서, 아기를 원하는 불임 부부들에게 큰 희망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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