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뜬금없이 선물을 주겠다는 전화를 병원으로부터 받았다. 뭔고 해서 보니, 핫라인. 환자, 아니 고객의 불만을 접수하는 곳에 나를 대상으로 하는 글이 있어 해명 내지는 설명을 적어 내라는 것이었다. 내가 받아본 두 번째 핫라인이다.
그러고보니, 첫 번째 핫라인은 이비인후과에서 예진하던 시절에 받았던 것으로, 우리 병원에서는 이비인후과 인턴이 외래에서 예진을 하게 되는데, 그 때 목이 쉬어서 온 환자에게 술과 담배를 얼마나 하는지, 목을 최근에 많이 썼는지를 물어봤었다. 핫라인 내용은, 공개된 장소에서 다른 사람 다 듣는데 큰 목소리로 술, 담배에 대해 물어봐서 불쾌하다는 것. 목소리가 변했을 경우 물어봐야 하는 내용이었고, 외래 대기실에 환자들이 많고 시끄러운데다, 귀도 어두우니 큰 소리로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고 핑계거리를 따져볼 수도 있겠다. 아무튼 그 뒤로, 예진실을 따로 만드느니 어쩌느니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도 자리가 비좁은데, 어떻게 독립된 예진실을 만들 수 있겠는가. 그대로다.
이번에 받은 핫라인은 며칠 전 응급실 당직할 때 왔던 환자로부터 날라왔다. 새벽 4시 50분 경 상복부 통증을 주소로 내원, 배를 만져보니 압통 부위가 여러 곳에 있고, 특히 오른쪽아랫배의 압통 등이 있었다. 지금 있는 강남에는 업무시간 외 가능한 응급검사 및 촬영의 종류가 제한되어 있어, 다른 검사가 필요할 수 있으니 큰 병원 가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했다. 핫라인 내용은, 침대에서 자다 나온 의사가 띠꺼운 표정으로 배를 여기저기 눌러보더니 큰 병원 가라고 했다는거다. 전날 낮에 하루종일 일 했고, 게다가 수술하는 날이었고, 밤에 이어 응급실 당직을 보느라 피곤해 죽겠다는 것은 내 사정이겠지만, 나의 의학적 판단과 병원 사정에 의해 환자를 위하여 다른 큰 병원을 권유했는데, 이 병원은 큰 병원 아니냐며 항변을 하니 할 말이 없다. 물론, 이를 전달하는 과정에 내가 좀더 친절하고 자세히 설명해야 했겠지. 이건 언제나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다.
난 히포크라테스가 되고 싶다. 하지만, 그럴 능력도, 인성도 갖추고 있지 못 하며, 현실적으로 모든 의사가 히포크라테스일 수는 없다. 아마도 나와 같은 대다수의 병아리 의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p.s. 왜 특별한 문제도 없는데 소위 링거, 수액 요법을 그리도 좋아하는지. 집에 가서 물 많이 마시고, 맛있는거 먹으라고, 젊은 사람이 여기 응급실에 잡혀서 두어시간 누워있으면 뭐 하냐고 돌려보내는데, 설명을 해 줘도 계속 달라는 사람들이 있다. 필요하면 안 하겠다고 해도 억지로 해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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