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전에 겪었던 일로 인하여 이 포스팅의 제목과도 같이 어렵고도 심오한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해 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 동안도 막연하게 생각만 해 오고 있었던 문제이긴 한데, 이번 기회에 좀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모 동호회의 나름대로 OB 모임에 참석을 하고 일찍 집에 들어오는 길이었다. 모임에서 꺼내 찍지는 않았지만 디카를 가지고 나갔었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보이는 풍경들을 왠지 담고 싶어 몇 장 찍었다.(허접하지만 아래 포스팅해 두었다.) 그러다 불현듯 생각난 것이 옆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밤마다 항상 분식을 파는 차량 노점이었다. 몇 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시는데, 비록 먹어보진 않았지만 맛있다는 소문이 퍼져있었다. 오늘은 왠지 그 풍경을 찍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항상 내리던 버스 정류장보다 한 정거장 먼저 내려 그 쪽으로 걸어갔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 노점은 인기리에 영업 중이었다. 아무래도 아직은 대상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쉽지 않아, 땡길 수 있는 만큼 최대의 광학줌을 땡겨 몇 장 찍었다. 그리고,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아저씨~ 아저씨~' 하고 부르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돌아보니 어느 아저씨께서 날 부르고 계셨다. 아저씨께 다가가니, 초상권을 언급하시며 당장 사진을 지우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미리 말씀드리고 찍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잘못도 있고 해서 알겠다고하고 노점을 찍은 사진은 바로 지웠다. 그리고 그 직전에 찍은 사진과 맨 처음 찍은 사진의 날짜와 시각을 보여드리면서 모두 삭제했다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이 분은 아주 강경하셨다. 좀더 확인해야겠다면서, 내 카메라를 빼앗듯 가져가시는 것이었다. 난 당황을 해서 왜 그러시냐고, 이 자리에서 확인하시라고 말씀드렸지만, 그 분은 잘 아는 사람에게 확인해야겠다면서 막무가내로 노점 앞으로 가셨다.
노점까지 가는 그 짧은 동안에도 계속해서 초상권과 경찰서, 카메라 압수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셨다. 속으로 '좀 오버하시는데.. 다 지웠는데 너무하시네.' 하면서 따라갔다. 디카에 들어있던 사진 130여장을 앞으로 한 번, 뒤로 한 번, 총 두 번이나 한 장 한 장 모두 리뷰를 하셨다. 사람이 없는 풍경 사진도 있지만 내 친구들과 가족들을 찍은 사진도 있기에 그건 보시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으나, 그 분위기에서 카메라 내동댕이 치실까봐 차마 못 했다. 그렇게 한참 사진을 보시는 동안 아저씨의 가족들은 가만히 계시고, 노점 주인 내외께서 점잔히 나를 타일러 주셨다. '기자들도 사진 찍으려면 미리 양해를 구하는 법인데, 학생이 잘못했다. 요즘 너무 세상이 무서워서, 사진이 인터넷에 한 번 잘못 올라가면 큰일나지 않느냐.'고 하셨다. 나도 연신 '생각이 짧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노점 풍경이 너무 보기 좋아서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하며 머리를 꾸벅했다. 그런대도 이 아저씨는 사진을 이리보고 저리보시며 내가 다 지웠다는 걸 계속해서 의심하고 계셨다.
한 10여분이 흘렀나보다. 몇 번이나 사진 정보의 날짜와 시각을 확인해 보시라고 알려드렸는데, 그제서야 현재 시각과 내 카메라에 담긴 사진들의 촬영 날짜/시각을 확인해 보시고 카메라를 넘겨주셨다. 그러시면서 사생활 침해로 경찰서에 끌려가야 하는데.. 하시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그냥 연신 '죄송합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굳이 캔디드 포토, Candid Photo의 거장인 앙리 까르띠에 브뤠송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가장 자연스러운 사진은 찍히는 대상이 찍히는 줄 모를 때 얻을 수 있다. 아름다운 연출 사진도 있겠지만, 나는 자연스러운 스냅 사진을 더 좋아한다. 그렇다고 아무나 마구 찍어 공개하는 것도 또 문제다. 초상권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게다가 요즘 세상이 너무 무서워, 인터넷에 한번 사진이 잘 못 올라가면 사회적 매장을 당하기 십상이다. 최근의 개똥녀 사건도 그러하고, 볼이 통통한 한 남자아이의 사진은 각종 패러디 사진에 응용(!?)이 되기도 했다.
나는 개개인의 초상권을 존중한다. 대상이 찍히는 것을 알았고, 사진 공개 가불의 의사를 밝히는 경우는 전적으로 그 의견에 따른다. 그리고, 스냅 사진을 찍더라도 가급적이면 개인의 사생활 침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 얼굴이 정면으로 보이거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을 공개하는 것은 삼가고 있다. 이는 입장을 바꾸어보면 응당 나도 그렇게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스냅사진, 즉 Candid Photo의 매력과 한 개인의 초상권 사이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사진의 '사'자도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셔터를 누르는 나도 이런 고민을 할 때가 왔나보다. 맘 편하게 사람 없는 사진을 찍으면 되려나? 아니면 아는 사람들만 찍을까?